전쟁은 필연적으로 남자들의

 목숨을 더 많이 앗아간다.

남북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어렵게 구함ㅜ)

 


 

남편을 잃고 가장을 잃은 여성들은

가혹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생활 전선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으니


이들 중에는 미군에게 

몸을 파는 여성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여성들을 흔히 "양공주"라고 불렀다.


 


 

 

미군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기브미 초콜렛"을 외쳤지만,



 

양공주들은 "헬로우, 아이러브유"를 외치며자기 몸을 사달라고 애원 했던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양공주"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미군이 장기 주둔하게 되자미군부대 주변으로 먹을것과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이더니 여기저기서 매음굴이 하나둘씩 나타나 일대에 "기지촌"이라는 홍등가가 조성됐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달러가 부족하고, 벌어들일 구실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달러를 벌어들일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만큼 기지촌 여성들이 벌어다 주는 달러가 막대했던 것이다.


 


 

 


그럼 기지촌 여성들은 

어떻게 공급이 되었는가?


 

그녀들의 개인 개인의 모든 사연을 들을수야 없는 일이지만, 돈을 벌수 있는 일자리를 알선 받고자 직업소개소를 찾은 여성이 대부분이고,



 

70년대 당시 15,000원 정도에 팔려 시작부터 빚을 지고, 빚을 갚기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적어도 60,70년대에서 80년대 까지도 팔려가는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말해 돈을 빌러 직업소개소에 들어선 그녀들은 대부분 가난한 10대 후반이고, 가족과 떨어지거나 고아가 많았다.



 

많은 오해와 다른 측면의 생각이 있을수 있겠지만...정녕 그녀들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매춘'사업으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추진한 일종의 사업이다.




 

당시 관련 공무원이나, 본 사업에 연관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그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선택했고, 어쩌구 저쩌구 이런 미친소리는 결코 개소리다!




 


잊지 말아야 할것은 

그녀들의 삶을 편견의 시선과 편협한 잣대로 

바라보느 일을 거두고 차가운 눈길 속에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던 외침소리에 

귀를 기울려보고 이제라도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흑역사...

마음이 아프네요...

Posted by 그날으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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